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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 중심지를 성벽으로 둘러싼 성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

안녕하세요.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된 동래읍성은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 중심지를 성벽으로 둘러싼 조선시대의 성입니다. 둘레 1.9km에 이르는 동래읍성은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 이어지는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 중심지 동래시장까지의 평지대를 일부 포함한 전형적인 평산성입니다.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한국 대표적인 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원된 동래성의 북문과 성벽, 그리고 축성 당시의 돌담이 남아있습니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부산진성과 함께 부산을 상륙한 왜군의 1차 공격 목표가 되어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군․관․민간의 장렬한 전투가 벌어진 최대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동래성을 공격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戦則戦矣不戦則仮我道, 싸울려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길을 비켜라) 라는 항복 권고에 대해 전사이가도난(戦死易仮道難,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고 답서하고 끝까지 항쟁하다 전사하였습니다.

산 정상에 있는 북장대입니다. 동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네요.

삼국시대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동래읍성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중건되어 임진왜란 이후에 방치되다가 1731년 동래부사 정언섭에 의해 지금의 규모로 확대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등 4개의 문 등의 시설이 있었으나 일본강점기 때 평지 성곽은 온데간데없이 철거되었고 남겨진 산성의 성벽 일부와 북문, 인생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가 복원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인생문」、왜란 중에 이 성문을 통해 피난한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인생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2007년 3월에 개관한 동래읍성역사관은 동래구에 설치되었던 동래읍성 모형을 중심으로 동래지역과 동래읍성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있습니다. 매년 10월 초에 동래읍성역사축제가 개최됩니다.

북문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동래읍성역사관

동래읍성 북문 인근에는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잔디광장과 조선 최고의 발명왕 장영실 과학동상이 있으며 1731년 동래읍성을 크게 확장했다고 적힌 조선시대의 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와 기념사진촬영지 등이 있습니다.

관광지명 동래읍성 東萊邑城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산동
지정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시대 조선시대
성곽규모 전체 길이 1,962미터, 높이 0.5~3미터

※위의 기사는 취재시점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현지 사정에 따라 지금과 내용이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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